인천 하루 여행, 그곳에서 온정을 느끼다

개강이 다가오던 2월 중순 무렵,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 근원이 불분명한, 이 문제의 자신감으로부터 여행 기사를 전담한 내가 정작 여행은 다녀오지 못하고 그렇게 우리 잡지 중 두 면은 순백의 상태로 세상에 내보내지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이런 저런 계획을 세워 놓았던 방학은 예상치도 못한 겨울 현장실습을 나가 있던 바람에 전원 리셋 상태가 되고 말았다. A부터 Z까지 야심차게 준비한 후에 기존에 계속해서 나왔던 여행 기사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만의, 새로운 스타일의 여행 기사를 쓰고 싶었던 나의 욕심과 시간적 여유는 쉽게 맞물리지 않았다. 결국엔 현실과 타협하기로 하고 기타 자본도 없는 내가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으면서, 근 몇 년 동안 학보에 실린 여행지가 아닌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을 때,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지역은 바로 인천광역시였다.


동화마을

당일치기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어깨와 손이 무겁지 않아서 좋다는 것이 아닐까. 나 또한 카메라와 핸드백만 들고 무작정 인천으로 향하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개인적으로 버스보다는 기차를 애용하는 편이라 오랜만에 고속버스를 탄 감회가 새로웠다. 기차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어 여행의 신선한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 버스는 장장 2시간을 달려 대전에서 인천까지 나를 안전하게 데려다 주었다.

인천종합터미널에서 나오면 바로 앞에 지하철이 있기에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인천터미널역에서 부평역까지 간 뒤, 인천역까지 가는 지하철로 환승했다. 제일 처음으로 향한 곳은 차이나타운과 근접한 송월동 동화마을이었다. 송월동은 소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달이 운치가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오랜 세월이 지나 허름해진 건물이나 담장에 세계 명작 동화를 테마로 하는 그림을 그리고 조형물을 설치하여 꿈과 희망이 가득한 지금의 동화마을이 되었다.

인천 주민들의 거처지이기도 한 이곳에서는 방문객들뿐만 아니라 현재 마을에 거주 중인 어르신들도 종종 뵐 수 있었다. 평일 낮 시간대임에도 마을은 꽤 많은 방문객들로 북적거렸는데, 시끄러운 소음으로 주민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 다 같이 놀러 와 동화마을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는 이들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얼굴은 그저 평온할 뿐이었다. 오히려 지나가는 방문객들에게 선뜻 나서서 마을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 주시거나 흐뭇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어르신들이 대다수였다. 한 할아버지께서는 내게 여기 마을을 보면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인어공주가 나온다면서 이런 동화 같은 그림들이 다 같이 나오면 얼마나 예쁘겠냐고 말씀하셨다. 이윽고 건강하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할아버지는 발걸음을 돌리셨다.

 

 마을 입구로부터 쭉 이어진 오르막길 끝까지 걷다 보면 오른편에 주차장으로 쓰이는 공간이 있다. 주차장 담벼락에는 다양한 동물 그림들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이 구조물과 같이 사진을 찍으려던 학생들이 있었는데, 벽을 넘어가 아슬아슬하게 걸터앉는 바람에 어르신들께 꾸중을 들어야만 했다. 마침 그곳을 찍으려고 기다리고 있던 나는 떨어지면 어떡하냐며 혀를 차는 한 할아버지의 혼잣말을 들었다. 예쁜 사진과 추억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면서까지 마을 어르신들의 걱정을 사는 몇몇 학생들의 행동은 좋게 보이지 않았다.


차이나타운

동화마을 입구로 돌아가 왼쪽 길로 틀면 바로 차이나타운 거리가 나오기 때문에, 굳이 먼 거리를 이동하지 않아도 구경거리가 두 배가 되는 점이 좋았다. 차를 타지 않고 친구나 연인끼리 가볍게 걸으면서 시간을 보내기에 적합할 것 같다. 여러 잡화점과 음식점의 외관을 구경하며 걷다가 어느 가게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선 것을 보게 되었다. 뭐 하는 곳인데 사람이 저렇게 모여 있는지, 어떤 것을 파는 건지 궁금했던 차에 가게 앞에 걸려 있는 작은 현수막을 보고 그것이 홍두병인 걸 알았다.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도 소개되었던 가게로, 통팥과 망고, 크림치즈 이렇게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는데 나는 통팥을 골랐다. 사실 망고를 고르려고 했으나 주위에 서 있는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포기했다는 후문. 망고는 이상할 것 같다며 대체 누가 먹냐는 말에 그만 얇은 귀는 팥을 선택하고 말았다. 가격은 2천원에 우리가 길거리에서 사 먹는 국화빵과 비슷하고, 두툼한 빵 안에 단맛을 줄인 팥소가 적당히 들어가 있어 식사 후 가볍게 즐길 만하다.

이어서 향한 곳은 하얀 짜장으로 널리 알려진 중국 식당 연경이다. 다양한 중식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대표 메뉴라고 할 수 있는 백짜장과 찹쌀탕수육을 주문했다. 기본 반찬으로 단무지와 양파, 춘장과 간장이 나왔는데 기존에 보았던 것과는 다르게 조금 붉어 보이는 춘장의 맛이 특이했다. 생긴 게 된장 느낌인데 젓가락으로 찍어 먹어 본 것임에도 불구하고 짠맛이 확 느껴졌다. 찹쌀탕수육이 먼저 나왔는데 여기는 처음부터 잘라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직원이 직접 테이블로 와서 손수 잘라 줬다. 찹쌀 때문인지 쫀득해서 잘라 먹기가 힘들었지만 맛은 좋았다. 곧이어 백짜장이 나왔고 통상 봐 왔던 짜장면과 달리 면의 색이 확연히 보이는 비주얼이었다. 겉만 봐서는 소스가 심심할 것 같았는데 딱 알맞게 간이 돼 있어서 놀랐다. 자극적이지도 않았고 곁들여진 야채와 소스가 어우러져 맛있었다. 다만 주문한 메뉴가 둘이서 먹기엔 조금 많은 양이어서 남겼다는 점이 아쉬웠다.


자유공원

식당에서 나와 부른 배를 소화시킬 겸 자유공원 쪽으로 향했다. 이윽고 문화재로 지정된 조계지 돌계단이 나와 차근차근 걸어 올랐다. 마지막 계단에 다다랐을 때 왼쪽으로 삼국지 벽화거리가 보였다. 짧게 둘러본 뒤 자유공원으로 가려는데 할아버지 두 분이 내게 사진 한 장을 찍어 달라며 휴대폰을 건네셨다. 벽화를 배경으로 카메라 앞에서 해맑게 미소 짓는 두 분의 모습을 보니 괜스레 웃음이 났다. 휴대폰을 돌려받으시고는 고맙다며 여타 덕담을 내게 해 주신 뒤 자리를 뜨셨다. 다시 공원길을 걷다 보니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이 보였고, 곧바로 맥아더장군 동상이 위치한 공원이 나타났다. 동상 앞에 도착했을 즈음 내가 서 있는 곳의 반대 방향에서 할아버지 열 분 정도가 올라오셨는데, 나란히 줄을 맞춰 서더니 다 함께 충성을 하시고는 동상을 한참이나 바라보셨다. 계단을 올라 이 공원으로 향할 때 보였던 바이킹 생김새를 한 구조물의 정체는 건축물의 일부였다. 드넓은 공원의 앞쪽으로는 약간 가까이 바다가 펼쳐져 있어 시원한 바닷바람을 쐴 수 있었다. 쨍쨍한 햇살이 비춤도 잠시,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서둘러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갔다.

돌계단에서 내려와 오른쪽으로 꺾어서 쭉 걸으면 짜장면박물관이 나온다. 안내판을 보기 전까지 짜장면박물관인지 모르고 그냥 지나칠 뻔했는데, 사람들이 많이 있어 걸음을 멈췄다가 우연히 찾게 됐다. 성인 기준 천원에 입장권을 구매할 수 있고 2층부터 관람을 하고 내려와 1층을 보는 식이다. 차이나타운의 역사부터 젓가락, 짜장면 가격, 철가방 등의 이야기는 물론 짜장면의 종류와 조리법을 비롯한 짜장 관련 내용들이 보기 좋게 소개 글로 쓰여 있었다. 곳곳에 연출된 사람 모형이 있었는데 진짜 사람인 줄 알고 깜짝 깜짝 놀라곤 했다. 그만큼 역동적이고 생생하게 만들어 놓아서 사진으로 남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막 흥미가 생길 때쯤 박물관을 다 둘러봐서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었지만, 어째서 어른들이 졸업식에는 짜장면을 먹는 거라고 하는지 궁금증도 해결하고 시대에 따라 달라진 짜장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염두에도 없던 날짜와 장소로 여행을 떠났다. 그 누구처럼 꼼꼼히 계획도 세우지 못한 채 다녀온 짧은 당일치기였지만 생각보다 성공적인 일탈이었다. 사람 일은 모른다고, 언제 어디서나 계획에도 없던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이 내 앞에 펼쳐지기 때문일까. 설령 치밀한 계획을 짜서 떠난 여행이라고 한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인천 여행은 내게 의미가 있다. 난생 처음 만난 여학생의 부탁을 받고 그들의 사진을 찍어 주기도 하고 어르신들로부터 좋은 이야기도 들었으며, 똑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날이었다. 그럴 여유가 없다며 늘 여행보단 현재의 생활을 우선시했던 내가 무색하게도, 이제는 여행에 좀 더 과감해지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도 중요하지만 만약 그 일이 자신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면 강단 있게 여행을 떠나는 것도 또 하나의 좋은 해결책이 될 것이다.

P 글·사진 :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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