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칼럼_ 평범한 달인이 되는 길

여러분은 가을이 왔음을 어떻게 느끼십니까? 아침 저녁으로 쌀쌀해지는 날씨의 변화에서 혹은 설악산의 단풍 소식을 전하는 뉴스 화면을 보고 아니면 학교 근처 논에 있는 벼의 색깔이 황금빛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느끼십니까? 아니면 조금 슬프게도 2학기 첫 번째 수시고사를 치르면서 ‘아 ~ 벌써 가을이구나’ 하는 실감을 하지는 않는지요?

저는 시월이 오고 가을이 되었음을 언론의 보도내용을 보고 짐작합니다. 늘 시월초가 되면 방송과 신문들은 우리 사회가 한글을 잘못 쓰고 있다거나, 청소년들이 우리말을 이상하게 변질시키고 있다는 식의 뉴스들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한글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날이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TV의 연예오락 프로그램에서, 신문의 각종 기사에서 그들 스스로가 더 이상한 우리말들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말이 변하고 있는 모든 책임을 청소년들에게 떠 넘기고 자신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는 듯이 또 한글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가을이 깊어갑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자는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닌데 갈수록 점점 더 낯선 말들이 우리 주위에 넘쳐나고 있어서 안타깝기만 합니다.



진정한 달인은 우리 사회의 주

그래서 더 우리말을 잘 알고 써 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TV프로그램들도 등장합니다. 그중의 하나가 <우리말겨루기>라는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에 나와서 우리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띄어쓰기와 맞춤법에 정통한 분을 ‘우리말 달인’이라고 불러 줍니다. 우리말 달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저는 다른 방송사에서 보여주는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떠올립니다. 이 프로그램은 우리 주변에 묻혀 있는, 세계적으로 대단히 지위가 높은 것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우리 이웃이면서 한 가지 분야에 꾸준히 노력하며 살아온 분들을 찾아내어 소개하는 아주 좋은 프로그램입니다. 이 방송을 통해서 달인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짬뽕 잘 만드는 중국집 아저씨, 타이어를 굴려 정확히 원하는 곳으로 보내던 타이어가게 총각, 한 손에 턱 잡으면 정확히 한 봉지에 들어갈 만한 숫자의 이쑤시개를 집어서 포장하던 아주머니, 88세에 한글을 배우는 열정의 할머니 등등 참 놀라운 분들이지요.

그리고 달인이라는 말을 을 더 널리 알린 것은 여러분도 잘 아시는 것처럼 모 방송의 <개그콘서트>에 나와 한 분야에서 16년 동안 열심히 노력했다는 너스레를 떨면서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고난도 묘기들을 선보여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웃음을 선사한 김병만이라는 개그맨 덕분이었지요.

생활의 달인에 나온 분들과 개그맨 김병만씨의 차이는 매우 컸습니다. 개인의 노력으로 특별한 모습을 보여 주었던 김병만씨와 달리 생활의 달인에 보여졌던 분들은 모두 우리 이웃의 서민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누구든 한 우물을 파면 달인이 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해 준 것이지요. 78살에 한글을 배우기 시작해서 10년 만에 초등학교 학력을 인정하는 졸업장을 받은 88세의 할머니는 “하늘을 날아갈 것 같다”는 말로 그 커다란 기쁨을 표현하셨습니다. 정말 우리 주변에는 이런 작지만 엄청난 노력으로 달인이 되신 존경스런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비록 생활의 달인에 출연은 안 하셨지만 우리 주위를 둘러 보면 진정한 달인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평생을 가족들 뒷바라지하느라 자신의 손에는 흔한 로숀 한번 안 발라보신 우리 어머니들, 누가 알아주는 사람 없어도 묵묵히 길거리를 청소하시는 미화원 아저씨들, 명절이 되면 오히려 더 긴장이 되어 고향에는 갈 엄두도 못 내고 지역을 돌보는 소방관과 경찰관들…

자신이 속한 삶의 현장에서 묵묵히 그곳을 지키는 분들이야 말로 우리 삶의 달인들입니다.


쉬운 우리말 쓰기로 평범한 달인 되기

이 프로그램에 나오시는 분들처럼 <우리말 겨루기>는 매주 한번 씩 우리 주변의 이웃들이 출연하여 우리말과 글에 대한 실력을 겨루어 승부를 가리는 퀴즈쇼입니다. 최종 3연승에 성공하여 우리말의 달인이 되면 3천 만원의 큰 상금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수많은 분들이 이 프로그램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때로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 떠 오릅니다. 평범한 시청자들은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리말의 몰랐던 단어를 배우고 표기법을 정확히 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때로 지나치게 어렵고 궁벽한 단어들을 문제로 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한마루공사’나 ‘맛장수’ 같은 말의 뜻을 정확히 아는 분들이 얼마나 계실까요? 물론 프로그램의 취지는 이런 말들을 현실에 되살려 널리 쓰이게 하자는 뜻이 있었겠지만, 자칫하면 우리말의 달인이 현실에서는 쓰이지 않는, 사전 구석에 박혀 있는 말을 많이 알아야 오를 수 있는 자리라고 오해하게 만드는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러니까 진정한 우리말의 달인은 이런 어려운 말을 많이 알고 있는 분들보다, 띄어쓰기를 정확히 알고 있는 분들 보다, 조금은 어눌하고, 때로 서툴게 쓴다고 해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쉽고 아름다운 말들을 잘 쓰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그리고 어떤 말을 쓰느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말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을 한 번 더 배려하고 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고,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며 말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우리말의 달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글 / 정경일(디지털콘텐츠·디자인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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