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모 작가의 소설 <한 스푼의 시간>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일명 휴머노이드 로봇이 등장하기 때문에 SF 장르일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책장을 계속 넘기다 보면 알 수 있듯이, 작가 특유의 섬세함으로 로봇이 아닌 인간을 더 조명하고 있어 ‘사람다움’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게끔 만든다. 마치 브라운관을 통해 TV드라마를 시청하는 사람들처럼, 독자들은 로봇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아내와 사별하고 홀로 후미진 동네에서 작은 세탁소를 운영하며 살아가는 오십대 노인이 있다. 아들은 유학을 보냈다가 아예 그곳에서 직장까지 얻어 자리를 잡는가 싶더니, 업무를 보려고 이동하던 중 비행기 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행기가 태평양 한가운데에 추락하여 정명은 하나뿐인 아들의 행방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어느 날 그 앞으로 웬만한 가전제품 크기에 버금가는 택배가 배송되는데, 해외에서 부친 탓에 영문자가 가득하여 정작 수취인인 정명은 이해를 하지 못한다. 결국 영문과를 졸업한 이웃 세주의 힘을 빌려 그것이 아들이 생전에 다니던 회사로부터 온 것이며, 아들의 시신으로 착각할 만큼 사람 같았던 물체는 바로 로봇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명정은 이 소년형 로봇에게 둘째 아이의 이름으로 생각해 두었던 ‘은결’이란 이름을 붙여 주고 그를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탑재된 시스템 자체가 사람과 말을 하게 되면 일종의 연산 처리 과정을 거쳐 그 대화 내용을 분석하게 돼 있어서, 은결은 기존에 습득하고 있던 용어 말고 새로이 얻은 지식을 전부 자동으로 내부 메모리에 저장한다. 당시 샘플치고는 꽤 우수한 성능을 자랑했던 은결임에도 이론으로 아는 것과 실전에서의 경험은 엄연히 다른 법이다. 그 때문에 항시 데이터를 축적하게끔 제작되었겠지만,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인간과 로봇의 차이가 부각된다. 본문을 보면 정명이 은결에게 “한다. 하지 않는다. 하고 싶다. 하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만 하지 않는다.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한다. 이 의미를 모두 알고 있느냐”고 묻는다. 이처럼 ‘하다’라는 기본형 동사에 따라붙는 수많은 말들의 의미를 과연 은결이 제대로 이해하고 직접 응용할 수 있을까?

<한 스푼의 시간>은 그러한 생각에 파동을 일으킨 작품이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이 로봇도 어찌 됐건 사람 손에 사라질 소모품이다. 지금의 스마트폰처럼 새로운 모델이 끊임없이 나올 테고, 부품 교체로 오작동을 해결하지 못할 순간이 분명 올 것이다. 그러나 정명, 시호, 준교, 세주 등 주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자리를 지키는 은결을 보면서 로봇은 단순 소모되는 기기라기보다는 어쩌면 사람과 같이 늙어가는 존재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준교의 손녀를 돌보는 은결의 모습과 함께 이야기는 끝이 나지만, 마지막까지 은결이 인간의 감정을 획득했는지에 대한 여부는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사실상 이에 대한 고민은 책을 덮는 순간까지 이어진다. 은결이 특수한 로봇이라는 사전 정보를 배제한 채, 시호를 대하는 그의 태도를 보면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남학생처럼 보인다. 정명 또한 그런 모습에서 연모의 흔적을 느끼곤 하는데, 당사자 은결은 자신의 행동이 사전 상의 연모와는 일치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 머리론 알지만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은결의 감정이 정말 사람과 같은 건지 아니면 그저 모방을 하는 건지 명확한 표명은 어려워도 이것 하나만은 명심했으면 싶다. 우주의 광활한 시간 속에서 인간의 삶은 아주 짧기에 사람들은 그렇게 열렬히 사랑하고, 절망에 빠져도 열망은 잊지 않는다.

P 글 /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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