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N포털 사이트에서‘직장인 신조어’라는 글을 보게 되었다. 단순한 유머 글이었던 게시물은 빠르게 퍼져 많은 사회초년생과 대학생들의 공감을 샀다. 신조어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바로‘넵병’이라는 것이었다.‘넵병’이란 카카오톡과 같은 SNS 메신저로 업무 공유 및 지시가 많은 요즘에 상사의 말에 무조건‘넵’이라고 대답하는 것을 말한다.

고교 생활이 끝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는 어딜 가나 막내였다. 하지만 막내라는 타이틀과는 다르게 숫기가 많은 편도 아니고 낯을 많이 가리는데다가 특히나 연장자를 어려워해 협동해서 일하는 것과 소통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의 말에 매번‘네’라고 답하기엔 딱딱해 보이고, 그렇다고‘넹’이라고 하기엔 장난기 있어 보이고, 많은 고민을 하다가 대답으로 결정한 것이‘넵’이었다. 상대방과의 관계에 적절한 선을 유지해주고 짧게 끊어지는 대답은 똑부러진다는 느낌을 주어 열심히 일하는 일상까지 주는 것 같았다. 근래에 시작한 아르바이트의 단체 채팅방만 봐도 그렇다. 내가 그곳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은 역시나‘넵’이다.

나만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모두가 공감하는 일이 되어 신기했지만 그만큼 그 짧은 대답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넵’이라는 대답만을 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해보며‘넵병’에 같이 공감을 했던 친구들과 이야기를 했었다. 한 친구는‘넵’이라는 대답을 하는 이유를 돈을 지급해주는 갑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고 했다. 임금체불과 여러 곳에서 받았던 당일해고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기간 내내 불안해하며 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례로 고용노동부에 신고를 한 또 다른 친구는 자신만 힘들어질 뿐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무리한 일을 시켜도 무조건적으로‘넵’이라는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고 한다.‘넵병’에 대해 친구들과 여러 사회초년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나는 이 문제가 갑을관계 속에서 생겨난 현대인의 마음의 병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갑과 을의 나라라는 글을 본적이 있다. 그만큼 우리가 사는 곳에선 오래전부터 불합리적인 일이 빈번히 일어났다. 땅콩회항사건과 남양유업의 욕설우유사건으로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새로운 법이 제정되었지만 그 후에도 갑질논란으로 여러 기업들이 포털 사이트의 사회면을 장식하는 등 갑질사회의 뿌리가 뽑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뽑히지 않은 뿌리는 또 다시 자랐으며 자라난 열매는 다시 우리 사회에 스며들었고 갑을관계는 이제 일상이 된 SNS에서도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일터에서만 겪을 수 있었던 압박감은 이제 휴대폰을 지배했다. 벗어날 곳이 없다. 회사 밖에서도 휴대폰에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갑을관계는 결국 현대인에게‘넵병’이라는 마음의 병을 안겨주었다고 생각했다.

필자는 잘못된 것들이 개혁이 되지 않는 이상 어쩌면 이 병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작은 변화가 일어날 때 진정한 삶을 살게 된다’라는 레프 톨스토이의 말이 있다. 평소에 노력이라는 말을 싫어하는 편이지만 바뀌지 않는 구조 속에서 그저 갑의 눈치를 보는 것보단 나는 나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갑의 무리한 부탁을 정중히 거절을 한다던가, 채팅방에 반복적으로 보냈던‘넵’이라는 답장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던가, 누군가에겐 사소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사소하지 않은 것들을 말이다. 사소한 변화는 나에게 용기를 줄 것이라 믿는다. 또한 그 변화는 나의 병을 낫게 할 것이고 나는 가뿐해진 마음으로 다시 일을 하러 갈 것이다.

 

굉장히 괜찮은 여자가 되고 싶었는데 여적 그렇게 되지 못해 실망하고 있는 나에게, 너에게, 모두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우리는 지금 가고 있는 거니까, 다 온 건 아니니까, 지금부터라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김나영, <마음에 들어> 中

 

/이수정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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