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문화생활은 남은 여가를 즐 기기 위한 일환이나 자유롭게 취미를 즐기려는 목적으로 이어진다. 또한 건강한 생활과 자기개발로 이어지면서 생활의 큰 활력을 불어주기도 하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특히 나 입에 오르내리며 대중문화를 이끌어 가는 방향을 제시하는데 그 중 100년이란 역사 를 자랑하며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뮤지컬에 대해 소개하려한다. 노래와 춤, 대사, 무대장 치 등이 함께 진행되는 종합무대예술의 표본인 뮤지컬의 일반적인 정의가 아닌 어떻게 발 전되었는지의 과정과 유래를 차근차근 짚어갈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뮤지컬에 대한 ‘얕은’ 지식으로 부담 없이 뮤지컬이란 문화와 역사에 대해 자연스럽고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보다 가벼운 마 음으로 담백하게 읽어주길 바란다. 그렇다면 100년전 즈음 18세기 유럽부터 들어가보자!

최초의 뮤지컬 작품 ‘거지 오페라’
뮤지컬은 상류층이 즐겨본 오페라와 대중이 즐기는 오페레타 또는 오페라에 공간적 기원을 두고 있다. 특히 작은 오페라란 뜻인 오페레 타는 1800년대 말부터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하여 음악극 분야로써 초 기 뮤지컬이 만들어지고 소비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영국에서는 오 페라의 전통이 없어 희극 오페라를 수입하고 있었는데 이 때 최초의 뮤지컬 작품인 ‘거지 오페라’가 무대에 등장했다. 이후 경제적·정 치적 이점을 누리게 되면서 19세기 말 영국은 뮤지컬 촌극(Musical farce)을 만들기에 이른다. 곧 공연의 주류가 되었고, 더욱 발전하면 서 1893년 “명량한 여인(A Gaiely Girl)”을 공연하며 뮤지컬 코미디(MusicalComedy)의 첫 작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거지 오페라 – 존 게이의 작품으로 빈곤층의 삶을 쉽게 그려내고 정부와 귀족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했다. 1728년도에 초연된 순간부터 18세기를 통틀어 62회나 공연될 정도로 대성공을 거둔 히트작.

미국 브로드웨이의 지평 을 연 작품, 쇼 보트
영국에서 만들어진 뮤지컬 코미디는 대서양을 건너 미국 뉴옥에 공 연되면서 미국에서의 ‘뮤지컬 코미디’는 점차적으로 대중예술로 장 착되었다. 뮤지컬 코미디란 음악과 가사, 줄거리가 합쳐진 것을 뜻하 는데 기존의 쇼적인 구성에서 벗어나 노래와 춤, 그리고 극적 요소를 강조한 분야가 합쳐지면서 오락적인 문화가 자라 잡게 되었다. 이 때 1927년 만든 뮤지컬 ‘쇼 보트’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쇼 보트는 많은 대사와 탄탄한 스토리, 인종과의 화해를 다룬 북 뮤 지컬이다. 당시 독창적인 방법으로 흑인음악의 리듬을 적극 수용하며 만들어졌으며 이를 토대로 오늘날의 기존 뮤지컬들의 표본이 될 정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이자 최초의 북 뮤지컬 이라 불리운다.

*북 뮤지컬 – 대본이 만들어지고 대본의 흐름에 따라 음악이 만들어지는 형식. 다양한 주제를 다른다는 점에 오늘날에는 정통 뮤지컬이라고 부른다

문화의 선두주자
뮤지컬 발전기 시작

 

뒤이어 반세기동안 미국에서는 수 많은 뮤지컬들이 쏟아져 내리면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세계적인 예술로 승화시기에 이른다. 이러한 위력을 가진 콜 포터, 레너드 번스타인, 어빙 빌린, 조지 거쉬 등이 세계 뮤지컬을 주름잡았고 특히 로저스와 해머슈틴은 미국 역사상 최고의 콤비로 활약하면서 가장 성공적인 상업 연극으로 발전되었는데 이 시기를 우리는 ‘뮤지컬 황금기’라 일컫는다. 이 두사람은 뮤지컬이 단순한 코미디 형식에서 탄탄한 줄거리를 더해 뮤지컬 장르를 확대시켰고 대표적인 작품으로 ‘아가씨와 건달들’, ‘왕과나’, ‘마이 페어 레이디’, ‘사운드 오브 뮤직’,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등을 제작했다.

*뮤지컬 촌극(Musical farce) – 자유롭고 애매한 제목의 극본, 풍부한 노래와 춤이 등장하는 뮤지컬

역사문화의 증거였던
뮤지컬 전환기를 맞이하다

오락적이고 유쾌한 면보다고 시대적인 상황을 반영해서 사회적 주제나 사실적 내용한 진지한 뮤지컬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즐거움이나 오락적인 형태보다도 예술성이 높은 작품을 선호하거나 호소력이 짙고 강한 작품들이 줄줄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때에 비틀즈나 앨비스 프레슬리 풍의 전자 사운드 음악이 주를 이루기도 했다.
1980년대 뮤지컬은 미국과 영국의 전유물이라는 개념을 넘어서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하나의 문화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나라와 국경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대중화로 진행되면서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게 된 것인데, 이러한 전환에 가장 공헌을 한 인물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역할이 컸다. 그의 작품은 캣츠, 에비타,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등을 제작하며 캔머런 매킨도시와 함께 최고의 작품을 일궈내는 데 성공했으며 특히 독특한 소재 속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 아름다운 명곡을 만들어내 뮤지컬계 거장으로 손꼽히기도 하다.

우리나라만의 최초의 뮤지컬
그 시초는 어떤 작품일까?

국내 뮤지컬의 시초는 언론계에서 활동하던 설의식과 서향석이 극작가인 박노홍과 함께‘라미라가극단’을 만들어 1941년 8월 부민관(경성관 부립극장)에서‘견우직녀:지상편’작품이었다. 전래민요를 독창과 합창으로 편곡한 작품인데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과 예술인들이 참여했던 공연이라한다.
이후 조국 광복과 함께 다양한 관객을 확보하면서 많은 극단들도 창성되기 시작한다. 한국 전쟁 시기에는 당시의 상황을 반영해 만들어진 여성국극이 크게 흥행했으며, 대표적으로는‘하바네라’와‘루루태자’가 이 양상을 띄었다.
1966년 예그린악단에서 살짜기 옵서예 공연을 선보이면서 창작 뮤지컬 1호로 무대에 올라가게 된다. 살짜기 옵서예는 우리나라 설화‘배비장전’에서 그 이야기를 가져온 것으로 무려 34편에 이르는 우리의 고전소설과 설화를 검토하여 엄선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제주도 방언인 살짜기 옵서예는‘살며시 오세요’란 뜻으로 한국 특유의 민족 해학과 풍자가 곁들여 있는 작품이 특징이다. 이 작품은 4일간의 초연만으로도 무려 1만 6천여명의 관객이 동원했을 정도로 높은 기록을 세웠을 정도로 뛰어난 성과를 거누었다 한다.

오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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