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호기심에, 키우고 싶다는 짧은 생각만으로 동물을 키우다가 이들을 짐짝 버리듯이 버리는 일이 요즘은 비 일비재하다. 학교에 돌아다니는 이름표를 단 애견들 또는 TV에 나오는 길거리에 버려진 애완동물들을 보면 마음 속으로 화가나 참을 수가 없다. 아마 우리 집의 마스코트 ‘까미’와 ‘보리’때문일 것이다.
때는 2009년 7월 중 일요일이었다. 차마 눈도 뜨지 못한 작은 핏덩이가 박카스 박스 안에서 낑낑대며 허우적대 고 있었다. 같은 박스에 들어있는 형제는 박스 밖으로 뛰쳐나올 정도로 건강했지만 까미는 그렇지 못했다. 며칠 뒤 형제는 다른 집으로 입양을 갔지만 허리가 굽은 장애묘를 입양 받을 집은 존재하지 않았다. 죽을 때 까지만 키 우고자 마음먹은 것이 까미와 우리 가족의 시작이었다.
허리가 굽어 스스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밥도 스스로 먹지 못했기 때문에 부모님은 최대한 살릴 수 있을 때까지 만 키우자고 했었다. 주사기로 직접 밥을 먹여주고 허리를 잡아주며 운동도 시켰다. 그러자 곧 죽을 것만 같던 까 미가 스스로 걷기 시작하며 힘을 찾기 시작했다. 걷는 폼에서 불편함이 느껴지지만 독립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 을 되찾았다. 그렇게 까미는 사람들이 흔히 개냥이라고 부르는 얌전한 고양이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우리 가족은 추가적으로 생후 3개월이 된 ‘보리’를 키우고 있다. 보리 역시 우리의 바람으로 키우게 된 것이 아닌 우연적으로 키우게 된 고양이다. 다른 집에 분양을 갔다가 그쪽의 형편이 맞지 않아 중계자의 입장이었던 우 리 집이 맞아주게 된 것이다. 먼저 살고 있던 까미의 영향 때문일까. 보리 역시 우리 옆에 와서 같이 자거나 애교 를 부리는 등의 행동을 했고 우리 집에 더 이상의 고양이는 없을 거라며 호헌장담을 하던 아빠의 마음을 사로잡 아 버렸다. 그렇게 점점 보리 역시 우리 집의 구성원으로써 자리 잡아 갔다.
우리 가족의 지인들 중 우리가 짐덩어리들을 끌어안았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가족 이 까미와 보리랑 지낸 지난 시간들은 그렇지 않았다. 까미가 수술을 할 때는 가족 모두가 걱정을 했고, 새끼를 낳았을 때는 다 같이 즐거워했다. 보리가 토를 할 때면 모두가 걱정을 하며 식단을 짜줬다. 이 둘이 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정확히는 모른다. 하지만 우리 가족을 돌아왔을 때 마중을 나온다거나 옆에서 같이 잠을 자며 애교를 부리는 모습에서 이 둘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의도치 않은 인연이 있고 까미와는 9년이, 보리와는 4개월이 흘렀다. 까미를 키우는 동안 초등학생이던 나는 대 학생이 되었고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던 새끼고양이들은 자기들의 묘생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어 떻게 보면 우리들은 서로 불운으로 시작했다. 우리 가족에겐 예상치 못한 애완동물이란 짐을, 까미와 보리에겐 버림받았다는 슬픔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불운은 이제 행운으로 바뀌어 우리를 하나의 가족으로 만 들었다. 나는 하늘이 내려주신 작은 천사라고 느낄 정도로 이 인연에 감사한다. 존재만으로도 나에게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세상에 이 작은 생명들 말고 더 있을까? 작지만 위대한 이 천사들을 자신은 얼마나 소중히 생 각하고 대해왔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삶의 시름을 달래주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음악과 고양이다 – 알버트 슈바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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