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역사책 등에서 종종 무령왕릉 등의 백제시대 유물들을 설명할 때 ‘공주’라는 지역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필자는 공주에서 살기 때문에 책이나 TV에서 공주를 보게 된다고 해도 큰 느낌을 받지 못했다. 타지 사람들에겐 유명한 관광명소일지라도 필자에겐 그저 집 옆에 있는 박물관이나 능선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생활로 인해 1년 가까이 공주에서 살지 않게 된 지금, 더 이상 색안경을 끼지 않고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공주에 대한 추억과 상식을 통해 당일치기로 다녀와 봤다.

 

충청남도역사박물관

10년 이상 살아온 곳이기 때문에 여행하는데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구체적인 여행지를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공주행 버스에 올라탔다. 하지만 막상 공주에 도착하고 나니 오래 살아온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여행지를 찾지 못해 1시간 정도를 방황했다. 정처 없이 길을 걷던 중 고개를 드니 멀리서부터 벚꽃들이 만개해있는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장관에 이끌려 서둘러 발을 옮기니 충청남도역사박물관이었다. 멀리서 보았던 것처럼 계단 입구부터 늘어선 벚꽃들이 나를 반겨주는 듯했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조용해야할 박물관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서둘러 올라가 보니 그 소리의 정체는 ‘국고개 역사문화&벚꽃축제’였다. 초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박물관 앞에 있는 전통문화체험장에서 굴렁쇠나 제기 등의 전통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전통문화체험장을 지나쳐 박물관 내부로 들어갔다. 충청역사박물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상설 전시실에서는 충남의 역사와 문화, 충청과 선비정신의 전통, 충남의 옛 모습 등 책만으로는 알 수 없을 충남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자료들과 유물들이 관심을 끌었다. 이후 매년 다른 주제의 특별전이 개최된다는 기획 전시실로 들어갔다. 올해는 개관 10주년을 맞이하여 ‘충청유학의 밝은 미래를 연다’는 주제로 특별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선비의 초상, 고문서, 무덤의 부장품 등 충청남도 유학의 정수를 담고 있는 유물들을 유리관 없이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박물관을 빠져나오니 뒷동산으로 가는 표지판이 있었다. 표지판을 따라 작은 언덕을 하나 오르니 아래서 본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많은 벚꽃이 피어있어 하늘을 빼곡히 매울 정도였다. 심지어 공주 시내를 한 눈에 담을 수 있어 눈이 호강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주변엔 가족이나 연인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때문에 친구와 같이 왔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중동성당

박물관에 만발해있는 벚꽃들 사이로 길 건너에 중동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필자의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성당이었기에 새록새록 떠오르는 추억에 이끌려 서둘러 박물관 계단을 내려왔다. 예전에는 돌들을 쌓아 올린 허름한 돌계단이었던 입구가 현대식으로 다시 만들어져 있었다. 벽돌로 지어진 계단을 오르면서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을 보니 예전의 돌계단 보다 안전하고 조화롭게 느껴졌다.
계단을 올라 주차장으로 들어가니 사제관과 중동성당 본당이 한 눈에 펼쳐졌다. 초등학교 시절 세례복을 입고 세례를 받으러 가던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성당에 갈 때마다 ‘가브리엘 왔냐’며 인사해주시던 신부님과 수녀님을 뵙고 싶었지만 어째선지 사무실에 아무도 계시지 않았다. 본관 역시 잠겨있어 성당의 겉모습만 돌아볼 뿐이었다. 그래도 추억을 되살릴 수 있었다는 점에 의의를 두었다.

 

공주하숙마을

돌아다녀서일까 출출함을 느꼈던 나는 고등학교 때 자주 찾아갔던 분식집인 ‘중앙분식’을 찾아 제민천 거리로 들어갔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엔 휑 하기만 했던 제민천 거리는 70-80시대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벽화들로 채워져 있었다. TV 속에서 보던 옛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모습을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었고 제민천의 역사가 담긴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분식집에 가기위해 다리에 오르자 낚시하고 있는 할아버지 동상이 있었다. 할아버지 동상은 제민천 거리가 한눈에 보이는 위치에서 혼자 낚시를 하며 지난 세월을 떠올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리를 건너자 내가 찾던 중앙분식이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 옆에 공사를 끝낸 공주하숙마을 때문인지 손님들이 문 밖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줄이 줄어들 때를 기다리기 위해 공주하숙마을 구경해 보기로 결정했다. 공주하숙마을 앞엔 공주의 마스코트인 ‘고마곰’과 ‘공주’가 70-80시대의 교복을 입고 서 있었다. 웃고 떠드는 소리에 마당 안으로 들어가 보니 현대식 기와로 지어진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시끌벅적 했던 이유는 홈스테이가 가능하여 현재 손님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안채를 구경하러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담장이 보존되어 옛날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할머니 댁에서나 볼 만한 녹슨 초록색 철문까지, 옛날의 향수를 느끼기에 충분한비주얼이었다. 하지만 하숙마을이라고 하기에는 한두 채의 기와집만 지어진 상태라 허전함이 느껴졌다. 구경을 마치고 다시 분식집을 찾아갔지만 대기줄은 도저히 줄어들 기미가 안 보였다. 공주의 맛집이라 하면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중앙분식었는데, 눈 앞에 두고 돌아서야 한다는 생각에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공산성

공주하숙마을에서 10분 정도 걸어 공산성의 입구에 도착했다. 공산성 입구 앞 매표소에서 표를 구매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1,200원이라는 싼 가격이라 부담스럽지 않았다. 입장권을 구매한 후 정문에 서자 정면에 손으로 쌓아올린 듯한 견고한 성벽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공산성의 서문인 ‘금서루’를 통해 들어가니 큰길에 만들어진 큰 문과 계단을 올라 들어가는 작은 문이 있었다. 큰 문은 차량 등의 큰 것들이 오갈 때 쓰는 문이라고 한다. 문을 통과하여 금서루로 올라가면 성 윤곽을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를 통해 공산성을 둘러볼 수 있었다. 벚꽃이 만개한 아름다운 공산성의 내부와 공주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양쪽에 있으니 혼자 걷는 길이었지만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즐겁게 즐길 수 있었다.
길을 걷다보니 ‘쌍수정’에 도착했다. 쌍수정은 조선 인조가 반란을 피해 공주에 피난을 와 공산성에 머무는 동안 자신이 머문 곳에 있던 두 그루의 나무에게 정3품의 작위를 내렸다는 재밌는 일화가 있는 장소다. 또한 백제시대 왕궁지가 같이 자리하고 있어 여러 건물터와 연못 터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과 선조들의 건축미를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였다.

 

김치피자탕수육

공산성을 1시간 정도 걸어 돌아다니다 보니 몹시 배고팠다. 고민을 하던 끝에 공주에 살고 있는 친구를 불러서 공주의 명물이라고 할 수 있는 김치피자탕수육을 먹으러 갔다. 식당에 도착하니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시켜먹던 추억의 향기가 났다.
김치피자탕수육은 탕수육에 치즈와 김치를 올려서 만든 음식인데 처음 보는 사람은 낯선 비주얼에 놀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입 먹어보면 탕수육과 치즈의 고소한 조합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자칫 느끼할 수 있는 이 조합을 김치가 중화시켜 주면서 예상치 못한 맛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 친구와 나는 오랜만에 먹는 김치피자탕수육의 경이로운 맛에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고 순식간에 해치워버렸다.
하루 종일 걸어 다닌 탓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논산행 버스에 올랐다. 잘 가라며 손을 흔들어주는 친구를 보니 짧았던 여행이 끝났음이 실감났다.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던 것들이라도 충분히 즐거운 볼거리와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여행이었다.

 

김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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