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스스로를 어떤 때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가? 오늘 머리가 잘 됐을 때, 마음에 드는 옷을 입었을 때, 열심히 내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이 외에 순간에도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항상 아름답다. 그리고 나다울 때 가장 빛난다.

여기, 당신처럼 아름다운 이들이 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더 당당하게 나다움을 외치고 더 적극적으로 나의 모습을 찾아간다는 점이다.


사전 속의 드랙퀸

드랙(Drag)이란 자신의 성과 반대되는 옷차림,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드랙을 하는 남성을 ‘드랙퀸’이라고 하는데, 화려한 옷을 입고 공연을 하는 여장남자라고 이해하면 쉽다. 이는 ‘여자처럼 입다(Dressed as Girls)’에서 따와 “DRAG”이라고 부른다.
1870년경 유럽의 여성들은 연극과 오페라 무대에 오르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남성이 여성의 역할을 연기하며 여장이 시작됐다. 드랙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셰익스피어 때이지만 미디어의 발전에 따라 여장남자가 코미디 요소로 전락하게 되어 미국의 “blackface minstrel show(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흑인 흉내를 냈던 쇼)”에서 여성성을 조롱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드랙 문화는 다소 어두운 탄생 배경을 가지고 있으나 성소수자 문화가 미국 사회에 받아들여지면서 드랙퀸 역시 인정받게 됐으며 드랙을 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표현하고 이분법적인 성 역할 구분을 흐린다는 목적성을 가지게 됐다.

역사의 한 줄

‘스톤월 항쟁’을 아는가? 1969년 6월 28일 성소수자들이 많이 이용했던 ‘스톤월 인(Stonewall Inn)’이라는 술집에 경찰이 들이닥치며 시작됐다. 당시 미국에서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이 합법이었지만 매우 드물게 성소수자들을 맞이해주는 술집들이 존재했다. 스톤월 인은 그 중 하나로 성소수자 및 드랙퀸, 사회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쉼터가 되어 주었다. 그런 술집들은 경찰들의 단속 대상이 됐고 ‘남자가 남자 옷을 입지 않았다’며 과도한 폭행을 저지르며 스톤월의 일부 손님을 끌고 가려 했다. 이에 맞서 그들은 경찰에게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잊은 채 자발적으로 데모를 일으켰다. 당시 항쟁의 주역은 많은 드랙퀸들이었으며 이를 계기로 성소수자의 인권을 위한 운동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의 드랙퀸

그렇다면 코리안 드랙퀸도 있을까? 드랙 오디션 ‘루폴의 드랙 레이스(RuPaul’s Drag Race) 시즌8’에서는 한국인 교포이자 드랙퀸인 ‘김치(Kimchi)’가 활약한 바 있다. 동양적인 요소를 드랙으로 끌어들여 잘 녹여낼 줄 아는 능력과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고 있자면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국에서는 이렇게 오디션을 진행할 만큼 인지도 있는 장르이지만 한국에서는 생소한 문화로 받아들여진다. 아직 문화가 정착하고 있는 단계이기도 하고 드랙이라는 장르가 개인의 지향성을 존중하기 때문에 정해진 형태의 개념 역시 모호하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를 알리기 위해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기에 한국에서도 드랙이라는 장르가 점차 알려지고 있고 드랙퀸 김치는 내한공연에서 많은 인기를 끌며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책 읽어주는 드랙퀸

아이들은 배움을 통해 세상을 알아간다. 성 역할 또한 교육을 거쳐 형성되기에 어린 시절 올바른 가치관 형성이 중요하다. 작년 10월 15일, 서울 한남동 ‘스튜디오 콘크리트’에서는 드랙퀸 낭독회가 있었다. 낭독회에서 읽힌 동화책은 <원피스를 입은 모리스>였다. 동화책에서는 주황색 원피스를 입은 소년 모리스가 사회적 편견과 아이들의 놀림을 극복해내는 과정이 담겨있다. 드랙퀸들은 낭독회에 참가한 아이들에게 “넌 남자인데 왜 분홍색을 좋아해?”, “여자면서 왜 그렇게 조신하지 못하니?”같은 모진 말을 들어야 하는 세상이지만 ‘이래도 괜찮다’는 것을 이야기해준다. 아이들이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 올바른 성 역할과 가치관에 대해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셈이다. 또한 성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을 표현하는, 즉 나다워질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드랙문화의 확산

성소수자와 자유로운 성적 표현을 억압하는 시선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며 드랙은 대중들과 조금 더 가까워졌다. 개인이 원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무대컨셉과 의상, 메이크업 등을 선보이는 행위가 공연예술의 장르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또한 앞서 언급됐듯 이들이 인권운동에 함께했고, 오늘날에도 소수자들을 위한 인권운동을 공연의 형식으로 이어가고 있다. 그런 이유에서 이들은 ‘드랙 아티스트’라고 불리기도 한다.
드랙퀸은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여장 차림으로 꿈의 도시 헐리웃을 향해 돌진하는 <To Wong Foo>에서는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여자라고 생각되지도 않아. 그래서 천사라고 생각하기로 했어”라는 대사를 통해 젠더를 뛰어넘어 자신이 원하는 아름다움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원작 영화와 같은 제목의 뮤지컬 <킹키부츠>의 주인공은 가업을 물려받고 드랙퀸 롤라를 만나 신발을 제작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우정과 사랑이 바탕이 되어 소수의 문화인 드랙퀸을 부드럽게 그려냈다. 또 다른 뮤지컬 <헤드윅>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경계를 모호하게 설정해 성의 이분법적 구분에서 벗어나 주인공 헤드윅의 드랙 콘서트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구성해나간다.

*더 알아볼까? – 드랙킹(Drag King)

드랙킹은 여성이 남성으로 드랙을 한 경우이다. 이들은 남성주의를 풍자하기 위해 남장을 하고 공연을 한다.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이기 때문에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드랙퀸의 또 다른 시선

이런 드랙퀸 문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 또한 존재한다. 드랙퀸 문화는 과장된 여성성을 흉내냄으로써 여성의 모습을 희화화하고 여성의 성을 상품화한다는 점에서 소비하면 안 될 문화라는 주장이다. 여성에게 요구되는 옷차림, 화장 노동 등의 프레임을 드랙퀸들이 모방하여 남녀평등과는 역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이러한 행위는 프레임이 강화될 뿐이라고 한다. 또한 백인의 흑인 분장(black face)과 비슷한 맥락이라는 주장도 있다. 드랙퀸이 ‘blackface minstrel show’에서 조롱의 목적으로 사용된 이력이 있기 때문에 이는 피해갈 수 없는 논쟁거리이다. 그리고 일부 드랙퀸 및 남성 성소수자 사이에서는 여성이 모멸감을 느끼는 은어들을 공유하며 사용하기도 한다.
이에 반발하여 드랙 지지자들은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표현하거나 여성을 조롱하려는 목적이 아닌 나의 진정한 모습을 표출하기 위해 노력하기에 절대 ‘black face’와 같은 맥락으로 바라볼 수 없다고 말했다. 드랙퀸 다큐멘터리인 ‘파리 이즈 버닝(Paris Is Burning)(1990)’의 인터뷰를 참고하자면 “단순한 풍자 혹은 흉내가 아니다. 자신의 삶, 혹은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편견에 억압을 받기보단, 남과 어울리며, 당당하게 행동할 수 있다. 이건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드랙을 통해 자신감을 얻는 이들을 보면 여성비하의 목적은 없어졌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들에게 비춰지는 부정적인 시선들을 개선하기에는 아직 많은 변화와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신예은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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