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말에 오가며 실제상황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사건들이 존재하는데, 신비, 불가사의, 수수께끼를 떠오르게 하는 미스테리 사건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다양한 사건들 중 납골당 안에서 관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가슴 철렁한 이야기부터 장소만 찾는다면 한 번에 부자가 될 수 있는 실제 보물 이야기까지 탄탄하게 준비했으니 다들 미궁 속으로 한번 빠져보길 바란다.


바베이도스의 움직이는 관

베네수엘라의 북동쪽에 위치한 카프리 해의 섬 바베이도스에선 납골당 안에 있던 관들이 자기 멋대로 움직이며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정체불명의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을 우린 “바베이도스의 움직이는 관”이라 부른다. 영국의 귀족출신인 토머스 체이스는 1789년 바베이도스로 이주한다. 토머스는 노예뿐 아니라 섬의 원주민들에게 노동력을 착취하며 악명 높은 귀족으로 유명했다. 이어 토머스 체이스는 1807년 4월 10일 바베이도스 도심에 가족 전용 납골당을 만들게 된다.
이곳에 처음 안치된 사람은 체이스의 친척이었던 토마시나 고다드 부인이었는데 이 납골당에 안치된 관 중 유일하게 나무로 된 관으로 1807년에 안치됐다.
곧바로 1년 후인 1808년 토머스의 2살 된 딸 앤 마리아가 안치되고 우울증에 걸려 사경을 헤매던 첫째 딸 도커스는 아버지인 토머스에게 “바베이도스의 원주민들을 괴롭히지 말라”는 말을 끝으로 단식투쟁을 벌이다 1812년 7월 6일날 사망한다.
결국 토머스 또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1812년 8월 9일경 사망한다.

*이 납골당에 대해서는 다른 설도 존재하는데, 월론드 가문이라는 귀족 가문이 건설했지만 짓던 도중에 월론드 경이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면서 월론드 경의 친구이자 지인이었던 토머스 체이스에게 넘겼다는 설도 있다.

첫 번째 사건

토머스 체이스 관을 안치하기 위해 납골당 문을 열었더니 두 딸의 관이 벽에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앤 마리아의 관은 거꾸로 뒤집혀진 채 세워져있었다. 처음 사람들은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적들이 뒤집었나?”하며 가볍게 생각한 후 관 4개를 놓기엔 비좁은 자리라 토머스의 관 위에 도커스의 관을 겹쳐서 놨다. 이후 토머스의 관을 안치하고 나오니 원주민이 납골당 내부에서 빛이 나고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사건

이후 1816년 9월 25일, 토머스의 친척으로 11살 된 브루스터 앰스가 물놀이로 익사하여 납골당에 안치되었을 때도 관들이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세 번째 사건

그로부터 52일 후 또 다른 친척인 사무엘 브루스터를 안치하기 위해 납골당 문을 여니 먼저 들어갔던 관들이 모두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고다드 부인의 관은 부서진 채로 세워져 있었고 시체는 바닥에 있었다. 이 사건 이후로 바베이도스의 납골당에 관한 소문이 널리 퍼지게 됐다. 또한 소문 중에선 토머스 체이스의 가혹한 폭정을 당한 흑인 노예들이 이에 대한 원한으로 납골당을 헤집어놨다는 소문이 가장 많이 퍼졌다.

네 번째 사건

1819년 7월 7일, 토머스의 친척 토마시나 클라크의 관을 또 다시 안치할 예정이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바베이도스의 신임총독으로 선임된 스테이플턴 코튼 총독도 관심을 갖고 장례식에 참석했다. 이어 클라크 부인의 관을 안치하기 위해 납골당 문을 여니 이번에도 모든 관들이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이를 본 스테이플턴 코튼 총독은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모든 관을 제자리에 놓고 납골당 바닥에 석회가루를 뿌려 입구를 봉인했다. 1년 후인 1820년 4월 18일, 다시 납골당 내부를 확인하기 위해 벽을 부수고 문을 열려했지만 납골당 문이 열리지 않았다. 결국 공구를 사용해 힘들게 문을 여니 토머스의 관이 세워진 상태로 문을 막고 있었다. 남은 6개의 관들 또한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가장 이상했던 점은 모든 관이 움직였지만 모래는 그대로였고 외부의 침입도 없었던 상태였다고 한다. 결국 이 사건의 진실은 밝혀지지 못한 채로 미제사건으로 남아 1820년, 납골당에 있던 모든 관을 영국 본토로 옮겨갔다. 그리고 더욱 신기하게도 영국으로 옮겨진 이후엔 아무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바이런 프레이스 “더 시크릿: 보물사냥”

미국에서 1953년에 출생한 바이런 프레이스는 직접 출판사를 만들어 책을 발간하고 있지만 매번 출판할 때마다 인기를 얻지 못해 적자가 나고 있던 상황이었다. 많은 고민을 안고 있던 프레이스는 “보물을 책에 접목시켜보는 것은 어떨까?”란 아이디어로 보물사냥 책을 만들었다. 그는 책 표지에 성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는 노인을 비롯해 보석함을 들고 있는 마녀, 켄타우로스 등 12점의 그림을 그려 함께 출판했다. 이 그림에는 한 가지 비밀이 숨어있는데 12개의 책 그림은 보물 상자가 숨겨진 곳을 상징하는 열쇠이며 그 장소를 찾게 된다면 한화로 천 만원이 넘는 금과 보석이 함께 들어있다고 한다.

책이 출판되고 사람들의 첫 반응은 그저 책을 파려는 상술이라고 생각해 고작 1년에 2만8천여 권 밖에 팔리지 않았다. 또 다시 적자의 위기를 맞으려던 그에게 갑작스런 반가운 사실이 전해지는데, 시카고에 살고 있는 청년이 보물열쇠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발간일로부터 1년 후 시카고에 살고 있는 두 청년이 호기심에 보물사냥 책 표지를 보다 성 모양을 쓰고 있는 노인의 그림을 좌우대칭에서 보니 미국의 일리노이주 지도와 비슷했다. 뿐만 아니라 표지에 나와 있는 동상과 상징들이 일리노이주에 있는 곳과 너무나 일치했는데 가장 결정적이었던 단서는 풍차에 나타나있는 숫자였다. 숫자를 뒤집어보니 41, 42와 87, 88이 나타냈다. 이를 경도와 위도를 나타낸 것이라 추측한 두 청년은 해당 좌표가 위치한 곳으로 달려가 그림 중앙에 그려있는 동일한 모양의 기둥을 발견하고 파보니 그 곳엔 보물 상자를 의미하는 열쇠가 있었다고 한다. 곧바로 이 소식은 시카고 트리뷴지의 신문에 실려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다.

갑자기 엄청난 양의 책이 팔려나가고 보물열쇠를 찾기 위해 사람들은 여러 곳에서 보물찾기의 힌트를 찾아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첫 번째 보물열쇠가 발견되고 점차 보물찾기에 실패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서로 조작한 사건이라며 거짓소문도 떠돌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질 무렵, 드디어 두 번째 발견자가 무려 21년 만에 나타난다.
그 주인공은 바로 클리브렌드에 거주하는 변호사 브라이언 진이다. 진은 성배를 든 켄타우로스의 표지를 보고 단서를 찾았는데 왼쪽 상단 나무가 그려져 있는 부분을 뒤집어보니 오하이오주에 있는 클리블랜드 터미널 타워와 유사했다. 또한 석조건물의 기둥그림은 오하이오주의 클리블랜드의 이탈리아문화정원과 거의 일치했다. 앞서 발견한 열쇠와 비슷하게 이 표지에서 가장 결정적이었던 단서는 켄타우로스가 들고 있는 성배였는데 이 성배는 이탈리아문화정원의 분수와 아주 똑같았다고 한다. 그는 곧바로 오하이오주의 이탈리아문화정원으로 달려가 분수 근처에서 땅을 파보니 그 곳에서 두 번째 보물 열쇠를 발견했다.
두 번째 보물을 발견하고 난 뒤 프레이스의 보물사냥 책은 다시 유행이라도 탄 것처럼 더욱 인기 열풍이 돌았다. 이제야 그의 책이 빛을 받을 무렵 프레이스는 2005년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그 후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열쇠는 진실을 찾지 못한 채 아직도 비밀의 단서로 남아있다. 현재 들려오는 소식으론 12개 중 9개의 그림이 해독됐고 그의 아내가 보물을 대신 전달해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안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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