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예린 기자의
이산가족을 위한 합의점

한민족이던 우리는 남북 분단이 되며 약 1,000만 명의 이산가족이 발생됐다. 그 누구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물을 수도, 당장의 통일을 바랄 수도, 모든 이산가족을 만나게 해줄 수도 없기에 기약 없는 기다림만이 남아 있는 게 현 상황이다. 애타게 상봉을 바라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이산가족에 대한 남북한의 원활한 합의점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이번 제21차 이산가족 최종 상봉대상자로는 남북한 각각 100명씩만이 최종 합의됐다. 현재 우리나라에 등록된 이산가족의 수만 해도 13만여 명에 달하는데 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합의인원 수를 보며 과연 누굴 위한 합의인 것인지 의문점이 생겼다. 가족의 생사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그들에게 그 누가 섣불리 상봉의 기회를 쥐락펴락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구보다 간절히 가족과의 만남을 바라고 있는 이산가족들을 위해 국가가 부디 원활한 합의점을 찾아내어 더 이상의 슬픔이 없었으면 하며, 최선책으로 상봉 인원수의 증가와 함께 앞으로 있을 상봉에 대해 현명한 대처를 바라는 바이다.

 

신예은 수습기자의
우리는 간접적인 만남 또한 필요하다

같은 하늘아래, 같은 땅 위에 서 있지만 만날 수 없는 가족들. 얼마만큼 의 시간이 지나야 다시 얼굴을 마주하고 이름을 부를 수 있을까. 현재 통일부에 등록된 이산가족은 약 13만 2,600명이며 생존자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라고 한다. 또 생존자의 63%가 80세 이상의 고령자이며, 건강상의 문제로 가슴 설레는 상봉을 앞두고도 단념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만남과 교류가 필요하다. 금강산에서의 만찬과 만담회가 열리는 상봉이 아닐지라도 가족의 생사만 알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정보화 사회를 넘어 제4차 산업의 물결에 닿기까지 왜 우리는 선 너머 가족들의 소식을 전해들을 수 없어야 하는가. 직접적인 만남이 정기화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실질적으로는 어려움이 크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기에 더욱 더 간접적인 만남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또한 국가에선 남북 간 이산가족 생존자 명단을 재검토해 공유하고 기술적인 지원을 통해 효율적인 통신망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영상매체로 가족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여 국가가 먼저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대답해줘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국민들 또한 이산가족의 아픔이 개인의 것이 아닌 민족 전체의 일이라는 점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며 이들의 아픔을 해소하는 것이 종전을 해야 하는 또 하나의 큰 이유로 떠오를 수 있게 될 것이다.

 

박수진 수습기자의
남북 이산가족의 눈물이 멈추길 바라며

지난 8월 20일부터 26일까지 북한 금강산에서 두 차례에 걸친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열렸다. 그 중에는 피난 당시 네 살이었던 아들을 일흔 한 살 노인의 모습으로 마주한 어머니도 있었다. 뽀얗고 발그레했던 아이의 얼굴은 그간 67년의 세월을 말해주듯 나이테 마냥 주름이 졌고 맑디맑던 아이의 눈동자엔 슬픔이 가득 차있었다. 이보다 더 이산가족의 슬픔을 잘 보여주는 게 있을까.
올해 여러 차례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남북의 관계는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그만큼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서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았다.‘이러다 통일되는 거 아닌가?’,‘통일되면 남한만 망하게 되는 것 아닌가?’등등.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통일이 실현되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에서 통일을 바라는 기대는 이전만큼 크지 않고 앞으로의 사회를 살아갈 사람들은 우리가 아닌 후손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거에는 ‘단일민족’이라는 말이 두 국가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지만 다문화 사회에 들어선 요즘 시대엔 맞지 않아 한민족이라는 유대감도 퇴색된 지 오래다.
이미 지나버린 헤어짐의 시간을 되돌릴 순 없다. 그럼에도 이들의 슬픔을 끝낼 방법은 분명히 존재하며 여러 갈래의 길 중 북한의 개방이 가장 평화로울 거라 생각한다. 북한을 독립적인 국가로 인정하고 동시에 북한주민의 인권문제와 경제사정도 해결된다면 자연스러운 왕래가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먼 미래라도 그 바람이 실현되는 날, 그날의 우리는 또 다시 이별의 아픔을 겪진 않게 될 것이다.

 

안지연 기자의
이산가족 상봉,‘배려’해야 할 중요한 날이 아니던가.

남북의 분단으로 이리저리 흩어져 서로의 소식을 모른 채 살아가던 이들에게 유일하게 가족이란 끈을 이어주는 날, 이산가족 상봉. 지금껏 남북한은 흩어진 가족들을 만날 수 있게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해 슬프고도 감동적인 재회를 선사했다. 몇십 년이란 세월의 그리움을 단 몇 시간 만에 해결한다는 것은 턱없이 부족하고 또 부족해보였다. 이런 그리움의 현장 속에서도 눈에 띄었던 것은 가족들의 상봉도, 재회도 아닌 기자들이었다.
서로의 몸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이산가족 사이에서 눈뜨기 힘들 정도의 플래시가 터지고 주변에 많은 기자들이 몰려있는 모습이었다. 중요한 날이며 국가적으로도 기다리던 날이었지만 재회의 순간에도 기자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이미는 행동은 정녕 이 상황에서 옳은 행동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만들었다. 누구나 감동적인 날이라고 말할 만큼 이산가족 상봉에서 과연 이러한 모습은 그들을 배려하는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던가.“잘 지냈어?”,“밥은 잘 먹고 다니니?”등 일상적으로 나눌 수 있는 대화들이 이들에겐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소중한 시간이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보았던 그 장면에선 소중한 시간에 대한 배려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만이 가지는 시간 동안은 미처 말하지 못한 대화를 할 수 있게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그들에게 배려해줄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지나간 세월을 다시 채우는 건 쉽지 않지만 비어있는 세월을 온전히 가족과 함께 채울 수 있도록 조용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기자들이 조금 더 배려했으면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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