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 속 일제강점기의 잔상


해방 후 73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가난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발전해 이제는 당당히 경제 강국이라고도 불리우는 대한민국. 그러나 아직 풀지 못한 숙제가 하나 남아있다. 바로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문화의 잔재에 관해서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일제강점기 시대 문화는 우리 삶 속 깊숙이 남아 있었다. 온 국민이 즐겨 부르는 노래에서부터 생활공간에 이르기까지. 2018년을 살아가도 계속 그 시대에 머물러 있는 단어들과 생활모습에 대해 함께 알아보도록 하자.

  • 일상언어에 투영된 일제강점기

“삐까뻔쩍한 기라성 같은 와꾸 좋은 카수들이 간지나게 왔다리 갔다리하고 있는데 땡땡이 입은 사람이 꼬붕을 데리고 와서 가오를 잡고 무대뽀로 만나자고 땡깡을 부리길래 쿠사리를 줘서 내보냈다.”
혹시 위의 문장이 해석되는가? 이 문장은 놀랍게도 조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일본말이다. 노래 가사에도 종종 등장하는 ‘삐까뻔쩍하다’라는 말은 우리말 ‘반짝반짝하다’이고 ‘땡땡이’, ‘쿠사리’와 같은 단어도 각각 물방울무늬, 면박이다. 그래서 전체 문장을 우리말로 바꾸어보면 “반짝반짝 빛나는 별 같은 잘생긴 가수들이 멋지게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물방울무늬 옷을 입은 사람이 아랫사람을 데리고 와서 잘난 척하면서 막무가내로 만나자고 생떼를 쓰기에 면박을 줘서 내보냈다.”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이렇게 충분히 우리말로 바꾸어 쓸 수 있는데 왜 이런 일본말이 더 자연스러워진 걸까?
그 해답은 우리의 역사에 있다. 일제강점기 시대 일본은 대한민국의 뿌리까지 없애기 위해 민족말살통치를 실시했다. 그 당시엔 무조건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어만을 써야 했다. 그래서 그 시대를 겪은 사람들과 후손인 우리의 언어생활에선 당연히 일본말이 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재에도 우리말을 사용하지 않는 현상이 문제가 되며 그만큼 주의해야 할 단어도 많다. ‘땡깡’이라는 말이 그 예인데, 이는 상대방이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상황에서 흔히 쓰는 표현이다. 그런데 사실 이 말은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인들이 일본 경찰이나 공무원들에게 저항하거나 소리 지르는 상황에서 유래됐다. 일본 경찰들은 그 한국인들을 보고 “쟤네들이 땡깡부린다.”라고 표현했는데, 일본어 땡깡은 ‘간질병’이라는 뜻으로 우리의 저항을 간질병 취급했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 무대뽀는 전쟁에서 무기 없이 싸우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나타냈고, 수우미양가는 사무라이들이 목을 잘 벤 행위를 얘기하는 것으로 일제강점기 때 초등학교 성적표에 표기되면서 들어온 말이다.


 

  • 일제가 만든 우리나라 학교교육

“일동 차렷! 국기에 대하여 경례.”라는 지시에 따라 모든 학생들이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라는 구호를 외친다. 그런데 국기에 대한 경례 또한 일제강점기 시대 문화라는 것, 알고 있었는가? 지금도 많은 학교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대한민국이 아닌 일본제국에 대한 맹세였다는 점만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군사교육을 배우게 하여 병사로 길러내려 했는데 이를 위해 집단생활과 전체주의를 강조하며 학교를 작은 군대로서 그 체제부터 바꿔나갔다. 그 예인 주번제도는 학생들에게 각자 역할을 분담하는 법을 배우게 한 것이고 이외에도 교훈, 급훈, 동상을 세워 집단생활에 효율적이게 만들었다.


 

  • 친일행위자들이 남긴 미술

우리나라 위인들에게는 각자 표준영정이 있다. 표준영정이란 우리 선현의 동상이나 영정을 제작할 때, 그 모습이 언제나 일정하도록 통일시켜놓은 초상화를 말한다. 바로 지폐에서 보는 세종대왕, 이이 등이 그 예다. 이 그림들을 제작할 때에는 인물의 생전 업적과 성격이 잘 드러나게끔 표현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마주하는 대부분의 표준영정은 친일행적이 있는 화가가 그린 것으로, 이순신, 정약용, 유관순은 장우성, 세종대왕, 을지문덕, 김정호는 김기창, 그리고 율곡 이이는 김은호 화가의 작품이다. 이들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강제징용 당하는 모습을 미화하는 등 일본의 행위를 돕는 데 앞장섰다. 친일행적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문제가 되지만 앞서 말했듯이 표준영정에선 인물의 위엄이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이런 역사의식이 부재한 작가들이 그려낸 작품은 표현에 있어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예로 친일화가 김은호가 그린 논개와 춘향의 표준영정을 비교해보자. 이 둘의 모습은 동일인물로 착각할 만큼 매우 유사한데 표준영정을 단순히 미인도 수준으로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친일행위자들의 동상도 많이 남아 있는데 그 예로 김성수 동상이 있었다. 김성수 동상은 일제강점기에 대학을 설립했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59년 서울 고려대학교 본관 앞에 설치됐었다. 그러나 김성수가 일제의 징병제를 찬양하는 글을 신문에 기고하는 등 친일행적이 드러나기 시작한 20여 년 전부터 동상 철거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결국 정부는 인촌 김성수에 대한 친일행위를 인정하고, 서훈을 박탈했다.
이와 같이 일제문화 청산 작업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친일행적이 밝혀지지 않은 것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 우리나라 전래동요가 아니라고?

“쎄쎄쎄~ 아침 바람 찬 바람에~”하고 도입부가 나오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울고 가는 저 기러기~”라며 따라 부르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 집에 왜 왔니’, ‘여우야 여우야’, ‘퐁당퐁당’, 그리고 ‘학교 종’과 같은 노래는 우리에겐 굉장히 친숙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우리나라 전래동요가 아니라는 사실을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 노래들의 뿌리는 와라베우타다. 와라베우타는 놀이를 동반하는 일본의 전래동요를 말한다. 이 일본 동요는 7음계 가운데 ‘파’와 ‘시’를 뺀 5음계만 사용하는 ‘요나누키 음계’로 이루어지는데, 흔히 ‘뽕짝 리듬(두 박자 리듬)’이라고도 말하며 우리나라 트로트에도 많이 쓰였다. 더구나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노래 중 하나인 ‘독도는 우리 땅’마저 일본의 음계를 따르고 있으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임식 때 불린 ‘희망의 나라로’는 당시 일본이 식민지였던 만주를 찬양하도록 하여 제작된 노래다. 문제는 일제강점기 시대에 일부러 이런 동요들을 전파시켜 우리 고유의 장단을 점차 없앴다는 데에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우리민족의 문화를 없애 식민지 지배를 효율적이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 일제가 세운 대한민국

우리의 건축물에서도 일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의 편의에 의해 건물의 위치가 옮겨지고 그 형태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경복궁은 1915년 조선 박람회를 위해 전시회장으로 사용돼 현재는 변형된 모습으로 남아있고 종묘 또한 군수물자를 나르기 위한 용도로 앞에 도로를 내어 원래의 면적이 아니다. 이뿐만 아니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체신국 청사였던 옛 국세청 남대문 별관이 남아 있었다. 지금은 철거됐지만 무려 78년 동안이나 그대로 있었다는 게 어떻게 보면 신기하다고도 할 수 있다.

기자시선

기사를 쓰기 위해 일제문화 잔재의 여러 사례를 찾아보면서 깨달았다. 필자는 그동안 아무런 고민 없이 대부분의 문화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 문화를 받아들일지 거부할지에 대해 결정해볼 생각조차 못했는데 이제야 그게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행위임을 알게 됐다. 이는 비단 일제문화 잔재뿐만이 아니라 평소 모든 것을 수용하는 태도에 관해서도 해당되는 말이다. 그래서 개개인이 일제문화 잔재를 당장 지울 순 없지만 수용할지 말지에 대해서 선택한다면 서서히 바뀌어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수진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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