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야기를 담을지 많이 고민했다. 기껏 고심해서 써놓고 마음에 들지 않아 엎고 쓰기를 반복했다. 글의 주제도, 제목도, 방향도 감이 오질 않았다. 마감이 성큼 다가와도 주제 하나 결정하지 못해 질질 끌었다. 온갖 고민이 가득했던 지난 밤, 자신 없는 글을 쓰기 보단 내가 잘 쓸 수 있는 주제를 택했다. 그래서 새벽의 힘을 빌려 평소라면 하지 못했을 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고등학생 당시 방송작가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낀 나는 글을 배우고 싶어 문예부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내가 원하는 글을 마음껏 쓰고,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풀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대학 입시에 맞춰진 동아리는 논술이라는 틀 안에서만 진행됐을 뿐, 백일장에서 글을 쓰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소설, 방송 대본, 어린이 동화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책을 수집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라도 꿈에 다가가고 싶었다.
시간이 흘러 대학교를 결정할 때, 성적이 부족해 원하던 대학의 신문방송학과를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던 도중 우리대학의 디지털콘텐츠디자인학부를 알게 됐다. 디지털콘텐츠 전공과 시각디자인 전공을 배울 수 있었는데, 나는 디지털콘텐츠 전공으로 방송·영상분야에 대해 배우고 졸업 후 작가의 길도 밟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에 진학을 결심했다.
그러나 현실은 내가 꿈꾸던 것과 달랐다. 영상과 콘텐츠에 초점이 맞추어진 강의는 내 흥미를 끌지 못했고, 존경하던 교수님과의 이별로 글을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없어졌다. 그렇게 점차 작가라는 꿈에서 멀어지게 됐고, 허무하게 1학기가 끝나버렸다.
별다른 소득 없이 마친 게 아쉬워 2학기에는 학부라는 장점을 살려 시각디자인 전공을 들었다. 난생 처음 듣는 디자인 수업은 나를 열등생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실력이 있다 못해 넘치는 동기들이 많았고 난 그 속에서 자신감을 잃어갔다. 하루하루 버티듯이 강의를 듣던 중, 학보사에서 먼저 활동하고 있던 과 동기의 제안으로 건양대 학보사 제 2차 수습기자 모집에 지원했다. 작가의 꿈을 잃은 이후 글 쓰는 것에 더는 미련 없을 줄 알았지만, 실은 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었다. 내 생각을 정갈한 글로 표현하고, 무엇보다 내 글을 읽는 독자들과 공감대를 나누고 싶었다. 당시 벅찼던 학과 수업으로 자신감을 잃었던 나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간절함을 담아 면접을 봤고, 그 결과 이렇게 학보사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있다.
원하던 일을 한다는 건 날마다 보람차고 행복할 줄 알았지만 좋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여느 때처럼 마감을 하던 날, 완벽한 디자인을 위해 5번 넘게 갈아엎은 적이 있었다. 학보사는 단체 활동이자 기사를 포함한 잡지 디자인까지 직접 해야 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작업물이 완벽하지 않으면 피해를 줄 거란 생각에 열심히 바꿔나갔다. 그러나 계속되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러운 디자인이 나오지 않았다. 주변을 돌아봤을 때 이미 학보사 동기들은 내가 넘볼 수 없는 수준의 디자인을 해내고 있었고 나만 제자리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뒤쳐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보기 좋게 디자인 하지 못하는 내가 싫었고, 남들처럼 못하는 내가 답답했다. 자책으로 가득 찼던 그날 밤은 나를 향한 원망에 펑펑 울면서도 일거리에서 손을 뗄 수 없었다. 그 순간만큼은 내 자신이 한없이 비참하고 처량했다.
변화가 필요했다. 언제까지고 슬퍼할 수만은 없는 일이니까. 내가 실력이 부족한 것과 이겨낼 능력이 없다는 걸 깨달은 이상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나날이 커지는 우울로부터 빠져 나오기 위해 한 문장을 마음 속에 담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자주 떠올리던 말은 아니었지만 그 때의 나에겐 간절히 필요한 주문이었다. 못 해도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부딪혔고, 안 되면 될 때까지 했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땐 처음부터 다시 방향을 잡고, 디자인이 성에 차지 않으면 과감히 엎었다. 실패할까봐 두려울 땐 지난날을 떠올리며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했고, 최소한 나라는 존재가 피해를 끼치지 않게끔 노력했다. 그렇게 학보사 활동을 한지 약 1년이 지났고 이젠 미약하게나마 자신감이 붙었다. 안 된다고 좌절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게 더는 두렵지 않았다.
3학년을 앞둔 지금은 시각디자인 전공의 길로 완전히 들어섰고, 학보사에서는 수습기자가 아닌 어엿한 정기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힘들었던 디자인과 강의는 자존감을 깎아내렸고, 글이 써지지 않는 새벽에는 남몰래 울며 부족한 능력을 탓했지만 해야 하는 일이었고, 이겨내야만 했다. 시각디자인 전공을 듣게 된 것도, 학보사에 들어온 것도 다 내가 선택한 길이자 운명이니까. 지금도 내 실력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나아지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실을 조금씩 맛보는 중이다. 시간이 더 흘러 지난날을 돌이켜봤을 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했노라 느낄 만큼.
“당신 스스로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당신의 운명을 개선시켜 주지 않을 것이다.”
– B. 브레히트 –
/윤예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