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사람 병’이란 남에게 나쁜 말을 듣기 싫은 나머지 하기 싫다고 주장하지 못한 채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병이라 정의된다. 이 병의 치료약은 구할 수 없고 오롯이 본인 의지로만 이겨낼 수 있는 난치병이자 현대인들에게 자주 발견되는 병이기도 하다.

나 또한 이에 해당된다. 처음에는 “정말 착하구나!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 “너 없었으면 해결 못했을 거야” 등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 하고 다른 사람들의 미소에 내 자신도 뿌듯했기에 부탁을 잘 들어주는 착한아이로 자랐다. 그렇기에 착한사람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착한 존재라고 여겨왔다. 그래서 타인의 부탁을 더 들어주려 노력하고 그들의 부담을 줄여주고자 조언을 해주며 기꺼이 도왔다.

하지만 요즘 내 자신에게 답답한 감정을 느낀다. 예를 들어 시험공부를 위해 밤새 정리한 필기노트를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빌려주고, 일을 잘할 것 같다며 조별과제 팀장을 맡아 과제를 이끌어 가는 등 무리한 부탁을 받아들이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 지금 필기노트 다시 보려고 했는데”, “팀장은 너무 부담이 되는데”라며 말하고 싶지만 사람들의 기대감 찬 표정에 목까지 나온 의견을 삼키며 억지웃음으로 상황을 무마하는 상황이 많아졌다. 과도한 기대감에 부담을 가진 건지 아니면 예의 있게 보이고 싶은 건지는 몰라도 나는 바보같이 거절도 못하고 내 자신을 속이며 부탁을 받았다. 그 덕에 나는 마음 한 켠 아래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스스로를 병들게 하고 있었다. 몸이 혹사당하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착한사람’이란 한 마디에 자신을 합리화하며 같은 행동을 반복하니 정체성에 혼란이 오고 마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못하겠어”, “너의 편의를 위해서 내가 희생해야 하니?” 라며 거절하고자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다짐했다. 하지만 남들이 비난하고 지금까지 참아왔던 내 모습이 한심해 보일까 봐 그 다짐은 이내 지키지 못했다.

왜 나는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았을까? 태생이 선(善)해서? 성격이 좋아서? 어렸을 때는 착하다고 생각했다. 남을 위한 행동을 하면 칭찬을 받았고 그 행동 자체가 좋았으니까. 그러나 점점 어른이 되어 갈수록 그런 행동들은 내게 부담이 되었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 보다는 타인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이 주된 행동원인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부탁을 들어주면서도 내면으로는 기쁘다 생각하기보다 부정적인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고, 역으로 남에게 내 의견을 말할 때도 머뭇거리며 쉽사리 입에서 튀어나오지 않았다. 돈 관련 문제, 역할 분담이나 해야 할 일에 차질이 생기는 등 타인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들조차도 망설이게 되는 원인이 되었고 당연히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해 피해를 입고 있었다. 남에게는 정말 착해 보이고 마음 편히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챙기지 못하는 착한사람 병에 걸린 것이다.

그렇기에 이 글을 빌려 가면을 쓰고 살았던 지난 삶을 반성하고 나를 위해 조금 이기적(利己的)인 삶을 살아보려 한다. 나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기에 모든 사람들에게 내 모든 것을 베풀 수 없고 늘 착할 순 없다. 그렇기에 나의 일을 최우선 순위로 정하고 남을 위해 사는 것보다 내 행복을 위한 목소리를 내도록 노력하겠다. 남을 위해 내 행복을 꼭 버려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물론 치료하기 쉽지는 않겠지만 이런 글을 쓰면서 점차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남의 시선에 영향을 받지 않는 진정한 나를 찾을 것이다.

/최찬영 수습기자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