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영원히 지속되는 순간이 있다. 몇십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내 기억 속엔 현재로 남아있는 그런 순간들 말이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 인생의 의미를 만들고 ‘나’라는 한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현재’들이 쌓여가고, 그 현재들에 대한 기억이 지금의 나를 만든다.
나에게 영원히 지속되어 온 첫 번째 순간은 1980년 4월 16일 아침이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아침방송을 들으며 등교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라는, 평범했던 초등학생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단어들을 아나운서의 음성으로 듣게 된 것이다. 궁금한 걸 참지 못했던 나는 만물 박사 아버지에게 ‘실존’과 ‘본질’이 무엇인지 여쭈어보았다. 모든 것에 정답을 주셨던 아버지는 그날 아침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시원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홉 살 인생을 살고 있던 나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그 후로 1980년 4월 봄날의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게 되었다.
운명이란 이렇게 기억의 실타래를 만들어 가는 것일까… 10여 년의 시간이 흘러 대학을 가게 되었고, 철학과 1학년 학생이 되어 그때 그 순간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1980년 4월 방송을 들었던 그 날은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1905~1980)가 서거한 날이었으며, 아마도 그날 아침방송의 진행자가 그 소식을 전하며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라는 사르트르의 유명한 구절을 인용한 듯하다. 그때부터 철학이라는 것은 아버지도 대답해주지 못하는 대단한(?) 것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가졌던 모양이었고, ‘철학’이라는 것은 쉽게 접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 중요한 ‘그 무엇’으로 마음속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불투명한 전망과, ‘젊음’이라는 실존의 무게감으로 늘 방황하던 20대를 보냈던 것 같다. 그런 20대에 하나의 이정표를 찍어 주었던 또 다른 순간이 있다. 그 사건은 ‘기호논리학’이라는 철학과 전공필수 과목 수업시간에 벌어졌다. 기호논리학이란 일상언어의 규칙성을 마치 컴퓨터 코드처럼 기호로 변환하여 논리적 타당성을 판별해내는, 말로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수업이다. 당시 기호논리학회 회장을 맡을 만큼 그 분야의 권위자로 존경을 받던 교수님은 아직 아무도 푼 사람이 없는 그런 어마어마한 문제들을 수업 끝 무렵에 퀴즈로 내고, 학생들을 집에 못 가게 만드는 유별난 취미를 가지고 계셨다. 그런데 어느 날 가장 어려운 퀴즈 문제 중 하나를 풀게 되었고, 교수님과 학생들이 경청하는 가운데 20여 분에 걸쳐 그 문제의 해답을 설명했다. 그리고 교수님은 나에게 “서민규씨는 참 클리어(clear)한 학생이구만!”이라는 말씀을 하셨고, 그때의 그 순간이 내 인생을 결정짓게 된 또 하나의 ‘영원한 현재’가 된 것이다.
그 후 철학 공부만 15년을 더 했던 것 같다. 물론 여러 종류의 아르바이트와 대학 조교 생활을 하면서 말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대학을 졸업한다는 것은 드라마 ‘SKY 캐슬’의 명대사처럼 “감당하실 수 있겠냐고 물어야”하는 일이었다. 불투명한 미래와 삶의 무게감은 여전했고, 앞만 보고 최선을 다하는 30대의 중반에서야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40대 중반의 문턱을 훌쩍 넘어 중년 아저씨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철학 수업을 들으러 온 학생들을 보며 가끔 나의 20대, 그때의 대학 시절을 떠올린다. 1990년대의 대학과 지금은 너무나 다르다. 그래도 어느 학생이 20대 대학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대답은 똑같다. 20대는 자기 실존의 무게감으로 늘 방황하는 것이 옳다. 나로서 살아가면서 ‘나’라는 정체성을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을 때가 20대 청춘이기에, 그것을 찾아 한없이 헤매고 방황해야 할 때가 바로 그때다. 고뇌와 방황의 내용이 다를 뿐, 그걸 짊어져야 할 때는 20대가 아니면 안 된다.
2019년 3월,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 여러분에게는 여러분만의 실존과, 그 실존을 감당해야 할 삶의 순간들이 있을 뿐이다. 그 영원한 현재를 여러분의 모든 일상에서 찾아내길 바란다. 물론 강의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영원한 현재를 살아가는 학생들의 눈빛은 다르다. 교수들은 강의실에서 그런 학생을 만나고 싶어 한다.

휴머니티 칼리지 서민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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